제 2화 「코스모나우트」 03 (完)







3


「언니, 운전면허 딴 거 언제야?」
「대학교 2학년때였으니까, 19살 때이려나. 후쿠오카에 있었을 때네」 자동차 운전을 하고 있을 때의 언니는, 우리 언니지만 요염하네―하고, 나는 생각한다. 핸들에 감긴 가느다란 손가락, 아침햇살을 반짝이며 반사하는 길고 검은 머리카락, 백미러를 힐끗 보는 몸짓이나, 기어를 바꿀 때의 손놀림. 열어놓은 창문에서 불어들어온 바람을 타고, 언니의 머리카락 향기가 희미하게 난다. 같은 샴푸를 쓰고 있을 터인데. 나보다 언니 쪽이 좋은 냄새가 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나도 모르게 교복 스커트 자락을 잡아 당긴다. 「있지 언니」, 나는 운전석의 옆모습을 보면서 말한다. 이 사람 속눈썹 길구나―. 「몇 년인가 전에, 집에 남자 데려온 적 있었잖아. 키바야시씨였나?」
「아아, 코바야시군 말이지」
「그 사람 어떻게 됐어? 사귀고 있었지?」
「뭐야 갑자기」 조금 놀란듯이 언니가 대답한다. 「헤어졌어, 훨씬 전에」
「그 사람이랑 결혼할 생각이었어? 그 코바야시씨랑 말야」
「그렇게 생각했던 시기도 있었어. 중간에 그만뒀지만 말야」 그리운 듯이, 웃으며 말한다.
「후―웅......」
어째서 그만둔거야? 라는 질문을 꾹 참고, 나는 헤어졌을 때를 물었다.
「슬펐어?」
「그거야 뭐, 몇 년인가 사귀었던 사람이니까. 같이 살았던 적도 있고」
왼쪽으로 꺾어 해변에 이어지는 좁은 길로 들어서니, 아침햇살이 똑바로 비쳐 들어온다.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 언니는 눈을 가늘게 뜨고 선바이저를 내린다. 그런 동작까지, 내겐 어딘지 요염하게 보인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서로 그렇게 결혼하길 원하고 바랐던 건 아니었어. 그러면 사귀고 있어도 마음의 갈 곳이 없어. 갈 곳이랄까, 공통된 목적지 같은 것 말이지」
「응」 잘 알지는 못하겠지만 나는 끄덕인다.
「혼자서 가고자 하는 장소와, 둘이서 가고싶은 장소는 다르거든. 하지만 그 무렵에는 그걸 일치시키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서 필사적이었던 느낌이 들어」
「응......」
가고싶은 장소―나는 마음 속으로 되뇌인다. 무심결에 길가로 시선을 돌렸더니, 야생 백향나리와 만수국이 한가득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눈부신 흰색과 노란색, 내 보디 수츠와 같은 색이다. 예쁘네, 꽃도 훌륭한걸―하고 나는 생각한다.
「갑자기 왜 그래」 언니가 내 쪽을 보며 묻는다.
「우―웅......왜 그랬달까, 별로 아무것도 아닌데 말야」
그리 말하고, 줄곧 묻고싶었던 것을 나는 물었다.
「있지, 언니 말야, 고등학교때 남자친구 있었어?」
언니는 별나다는 듯이 웃으면서,
「없었어, 너랑 같아」 라고 대답한다. 「카나에, 고등학생 때의 나랑 판박이야」

토오노군과 함께 돌아간 그 비오는 날로부터 2주가 지나고, 그 사이에 태풍 한 개가 섬을 지나갔다. 사탕수수를 흔드는 바람이 살풋하게 냉기를 머금고, 하늘이 아주 약간 높아지고, 구름의 윤곽이 부드러워졌으며, 카브에 타는 동급생들 중 몇 명인가가 얇은 점퍼를 걸치게 되었다. 이 2주동안 한번도 토오노군과 함께 귀가하는 일은 없었고, 나는 변함없이 파도를 타지 못하고 있다. 그렇더라도 요새는 이전보다도 더욱, 서핑하는 것이 무척 즐겁다.
「저기, 언니」
서핑 보드에 윤활용 왁스를 바르면서, 나는 운전석에서 책을 읽고 있는 언니에게 말을 건다. 차는 언제나 그랬듯이 해안 옆 주차장에 세워져 있고, 나는 보디 수츠로 갈아입고 있다. 오전 여섯시 삼십분, 학교에 가기 전까지의 이 한시간, 바다에 들어가 있을 수 있다.
「응―?」
「진로에 관한 것 말야」
「응」
나는 문을 열어놓은 스탭 왜건의 트렁크에 걸터앉았기에, 언니와는 등을 돌린 방향으로 얘기하는 모습이 되어 있다. 바다 저편 먼 곳에서, 커다란 군함같은 잿빛 배가 정박해 있는 것이 보인다. NASDA의 배다.
「지금도 아직 어찌해야 좋을지는 잘 모르겠어. 하지만 괜찮아, 나 일단은 정했어」 왁스를 다 바르고, 비누같은 그 덩어리를 옆구리에 끼우며, 언니의 말을 기다리지 않고 나는 계속한다.
「하나씩 할 수 있는 것부터 할 거야. 갔다 올게!」
그렇게 말하고, 나는 보드를 품고 상쾌한 기분으로 바다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할 수 있는 것을 어떻게든 하고 있을 뿐, 이라던 그 날의 토오노군의 말을 떠올리면서. 그렇게 해 나갈 수 밖에 없다고, 그걸로 된 거라고, 나는 확실하게 생각한다.

하늘도 바다도 같은 푸른색으로, 나는 마치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좀 더 바다로 나아가기 위해 패들링과 돌핀 스루를 되풀이하고 있는 와중에, 점점 몸과 마음의 경계, 몸과 바다와의 경계가 흐릿해져 간다. 바다를 향해 패들하고, 다가오는 파도의 모양과 거리를 거의 무의식중에 재어서, 무리라고 판단되면 보드채 몸을 물 속으로 잠수시켜 파도를 넘긴다. 가능할 것 같은 파도라고 판단되면 턴 해서 파도가 다가오길 기다린다. 이윽고 보드가 파도에 들어올려지는 부력을 느낀다. 앞으로 일어날 일에 나는 가슴이 설렌다. 파도의 페이스에 보드가 맞춰지기 시작하고, 나는 상반신을 일으켜 두 다리로 보드를 밟고, 중심을 올린다. 일어서려 한다. 시야가 단숨에 올라가고, 세계가 그 비밀스런 광휘를 한순간이나마 보여준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나는 당연하게도 파도에 집어삼켜진다.
하지만 이 거대한 세계는 나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떨어져서 보면―예를 들어 언니가 본다면, 나는 이 빛나는 바다에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또다시, 바다를 향해 패들하여 간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한다. 그 와중에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그 날 아침, 나는 파도 위에 섰다. 거짓말처럼 갑작스럽게, 트집잡을 여지도 없이 완벽하게.

겨우 17년이라도 그것을 인생이라 말해도 좋다면, 내 인생은 이 순간을 위해서 있었던거구나, 하고 생각한다.

* * * * * * * * *

이 곡은 잘 알고 있다. 모차르트의 세레나데다. 중1 음악회에서 합주한 적이 있었고, 나는 건반하모니카 담당이었다. 호스같은 걸 입에 물고 숨을 쉬면서 연주하는 악기로, 자신의 힘으로 소리를 내고 있다는 감각이 좋았었다. 그 무렵, 내 세계에는 아직 토오노군이 없었다. 서핑도 하고있지 않았기에, 지금 돌이켜보면 심플한 세계였구나―라고 생각한다.
세레나데는 작은 밤의 곡(小夜曲)이라고 쓴다. 소야곡. 작은 밤이란 게 뭘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토오노군과 함께 하는 귀갓길은, 어딘지 모르게 작은 별이라는 느낌이 든다. 마치 우리를 위해 오늘 이 곡이 틀어진 것 같다. 어째 텐션이 오른다. 토오노군. 오늘에야말로 함께 돌아가지 않으면. 방과 후에는 바다에 가지 말고 기다리고 있을까나―. 오늘은 6교시까지밖에 없고, 시험 전이니까 부활동도 짧을테고 말이지.
「......나에」
응?
「카나에도 참, 얘!」
사키가 내게 말을 걸고 있다. 열두시 오십오분. 지금은 점심시간이고, 교실 스피커에서는 작은 소리로 클래식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다. 나는 사키와 윳코 세명이서 평소처럼 도시락을 펼쳐놓고 있다.
「아, 미안. 뭐라 말했어?」
「머―엉하게 있는 건 좋은데, 너 밥 입에 넣은채로 움직임이 멎어 있었어」 라고 사키가 말한다.
「게다가 왠지 싱글벙글하고 있었구」 라며 윳코.
나는 황급히, 입 속에 들어간 삶은 달걀을 씹기 시작한다. 우물우물. 맛있어. 꿀꺽.
「미안미안, 무슨 이야기?」
「사사키가 또 남자한테서 고백받았다는 이야기였는데」
「아―. 응, 그 사람 예쁘니까」 라고 말하고, 나는 아스파라거스 베이컨 말이를 입에 넣는다. 엄마가 만든 도시락은 정말로 맛있다.
「근데 말야, 카나에. 어째 오늘 계속 기뻐보이는데」 라고 사키가.
「응. 왠지 좀 무섭다야. 토오노군이 봤다간 쫄 걸」 라며 윳코. 오늘은 두 사람의 농담도 전혀 신경쓰이지 않는다. 그래애? 하고 나는 받아넘긴다.
「눈에 띄게 이상하네 이 애」
「음......토오노군과 뭔 일 있었어?」
나는 여유롭게 대답하고 「흐흥―」 하고 의미심장하게 히죽 웃었다. 정확히는 앞으로 뭔가 있게 될 것이지만 말이지.
「에엑, 거짓말!」
두 사람은 놀라서 동시에 합창한다. 그렇게나 놀라기야? 나 역시 언제까지고 짝사랑인 채로 있지는 않을거라구. 파도를 탄 오늘, 나는 마침내, 그에게 좋아한다고 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 파도에 탄 오늘 말하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분명, 줄곧 말할 수 없어.

오후 네시 사십분. 나는 구름다리 복도 중간에 있는 여자화장실에서 거울을 향하고 있다. 6교시가 세시 반에 끝난 뒤, 나는 바다에는 가지 않고 계속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냈다. 공부같은 건 전혀 될 리가 없었고, 턱을 괴고 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장실 안의 공기는 싸하다. 어느새 머리카락이 자랐구나, 거울을 보면서 생각한다. 뒷머리가 조금 어깨에 걸려 있다. 중학교 때까지는 더 길었었지만, 고등학교 들어와서 서핑을 시작한 것을 계기로 머리를 싹둑 잘랐다. 언니가 선생으로 있는 고등학교에 들어 갔으니까 라는 이유도, 분명 있었다. 머리가 길고 미인인 언니와 비교되는 것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이제 이대로 기를까나, 하고 왠지 모르게 생각한다.
거울에 비친, 햇볕에 탄, 뺨을 발갛게 상기시킨 내 얼굴. 토오노군의 눈에는 내가 어떻게 비치고 있는걸까. 눈동자 크기, 눈썹 모양, 코의 높이, 입술의 윤기. 키라든지 머릿결이라든지 가슴 크기. 익숙해진 약간의 실망을 느끼면서도, 나는 자신의 파츠 하나하나를 체크하듯이 뚫어지게 본다. 치열이나 손톱모양이라도, 아무거나 괜찮으니까―내 어딘가가 그의 취향이기를, 하고 나는 바란다.

오후 다섯시 삼십분. 스쿠터 거치대 안쪽, 평소의 건물 뒤에 나는 서 있다. 햇살은 꽤나 서쪽으로 기울어 왔고, 건물이 늘어뜨린 긴 그림자가 지면을 빛과 그림자로 확실하게 둘로 나누고 있다. 내가 있는 장소는 그 경계, 아슬아슬한 그림자 속이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아직 밝고 푸르지만, 그 푸름은 낮보다도 조금이나마 바래져 보인다. 아까까지 수목을 채우고있던 말매미 소리는 잦아들고, 지금은 발치의 풀숲에서 많은 수의 벌레소리가 넘쳐 오르고 있다. 그리고 그 소리에 지지 않을 정도로 크게, 내 고동은 두근두근 소리를 계속 내고 있다. 몸 속을 허둥대며 혈액이 뛰어다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금이라도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심호흡을 해 보지만, 너무 긴장해 있어서, 나는 가끔 숨쉬는 것을 까먹어 버린다. 퍼뜩 정신차리고 크게 숨을 쉰다. 그런 불규칙한 호흡에, 고동은 쓸데없이 격해져 간다. ―오늘, 말하지 않으면. 오늘, 말하지 않으면. 거의 무의식 중에 몇 번이고, 벽으로부터 스쿠터 거치대를 들여다본다.
그래서 토오노군이 「스미다」 라며 말을 걸었을 때도, 느꼈던 것은 기쁨보다도 당혹감과 초조함이었다. 나도 모르게 꺅 하는 소리가 나와 버릴 뻔한 것을 필사적으로 삼킨다.
「지금 돌아가는거야?」 벽에서 들여다보고 있는 나를 눈치챈 토오노군이, 평소의 침착한 발걸음으로 스쿠터 거치대에서 가까이 온다. 나는 잘못을 들킨 듯한 느낌으로 스쿠터 거치대로 발을 내딛으면서, 「응」 이라고 대답한다. ―그렇구나. 그럼, 같이 가자. 언제나와 같은 다정한 목소리로, 그가 말한다.

오후 여섯시. 편의점 음료수 진열대에 늘어서 있는 우리를, 서쪽을 향한 창문에서 곧바로 저녁햇살이 비추고 있다. 평소엔 어두워지고 난 뒤에 오는 편의점이기에, 마치 다른 가게에 있는 듯한 불안한 느낌이 든다. 저녁 햇빛의 열을 왼쪽 뺨으로 느끼면서, 소야곡이 아니었구나, 라고 생각한다. 밖은 아직 밝다. 내가 오늘 살 것은 정해져 있다. 토오노군과 같은 델리 커피. 망설임 없이 그 종이팩을 손에 집어든 내게, 토오노군은 놀랐다는 듯이 말한다. 어라, 스미다, 오늘은 벌써 정한거야? 나는 그를 보지 않고, 응, 이라고 대답한다.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으면. 집에 도착하기 전에. 계속 심장이 뛰고 있다. 가게 안에 흐르고 있는 팝송이 내 고동을 지워주기를, 기도한다.

편의점 바깥도, 세계는 저녁해에 의해 빛과 그림자로 나뉘어져 있었다. 자동문에서 나온 곳은 빛 속. 편의점 모퉁이를 돌아, 스쿠터가 놓여진 작은 주차장은 그림자 속이다. 종이팩을 한 손에 쥐고 그림자 세계로 들어가는 토오노군의 등을 나는 보고 있다. 하얀 셔츠로 감싸인, 나보다 넓은 등. 그걸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저릿저릿하며 아프다. 강렬하고 애타게 사랑한다. 걷고 있는 그에게까지의 40센티 정도의 거리가, 갑작스럽게 5센티 정도 더 멀어진다. 갑자기 격렬한 외로움이 솟아오른다. 기다려 줘. 라고 생각하며, 순간적으로 손을 뻗어 셔츠 자락을 붙잡는다. 아차. 하지만, 지금, 좋아한다고 말하는거야.
그가 멈춰선다. 넉넉히 시간을 두고, 천천히 나를 뒤돌아본다. ―여기가 아니야, 라는 그의 말이 들린 듯한 느낌이 들어서, 나는 오싹해진다.
「―무슨 일이야?」
내 안의 아주 깊은 장소가, 다시 한번, 흠칫 떨렸다. 단지 조용하고, 부드러우며, 차가운 목소리. 나도 모르게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게 된다. 조금도 웃고있지 않는 얼굴. 엄청나게 강한 의지로 가득한, 조용한 눈.

결국, 아무것도, 말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강한 거절이었다.

* * * * * * * * *

쓰르르르륵.......쓰르라미의 울음소리가 섬 안의 대기에 반사되어 울리고 있다. 아득히 먼 곳의 숲에서는, 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 새들의 날카롭고 드높은 소리가 작게 들려온다. 태양은 아직 아슬아슬하게 저물지 않았고, 귀갓길의 우리를 복잡한 지치보라로 불들이고 있다.
나와 토오노군은, 사탕수수와 고구마밭으로 감싸인 좁은 길을 걷고 있다. 아까부터, 우리는 계속 아무 말이 없었다. 규칙적인 두 사람 몫의 딱딱한 구두소리. 나와 그 사이는 한걸음 반 정도 떨어져 있었고, 떨어지지 않기 위해 너무 가까이 가지 않기 위해서 나는 필사적이다. 그의 보폭이 넓다. 혹시나 화내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힐끗 그의 얼굴을 봤지만, 평소의 표정으로 단지 하늘을 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다리가 아스팔트에 늘어뜨린 그림자를 쳐다본다. 편의점에 두고 온 오토바이를 언뜻 떠올린다. 버리고 온 게 아닌데도, 자신이 잔혹한 짓을 해 버린 듯한 후회와 닮은 느낌이 있다.

좋아한다는 말을 집어삼킨 뒤, 마치 내 기분과 연동하듯이, 카브의 시동이 걸리지 않게 되었다. 시동기를 눌러도 발로 차서 걸려고 해도, 아무 반응이 없다. 편의점 주차장에서 오토바이에 올라탄 채로 초조해하는 나에게 토오노군은 역시나 다정했다. 나는 방금 전의 그의 차가운 얼굴이 마치 거짓말처럼 느껴져서, 어쩐지 혼란스러워졌다.
「아마, 스파크 플러그의 수명이 다 된게 아닐까」 내 카브를 대강 건드려 본 뒤에 토오노군은 말했다. 「이거 물려받은 거야?」
「응, 언니꺼」
「가속하면서 조금씩 쉬지 않았어?」
「쉬었을지도......」 그러고보니 요새, 가끔 시동이 잘 안걸린 적이 있었다.
「오늘은 여기에 두고 가게 해 달라고 하고, 나중에 가족분들께 가지러 와 달라고 하자. 오늘은 걷자」
「에엣! 나 혼자서 걸을게! 토오노군은 먼저 돌아가」 나는 안달하며 말한다. 폐끼치고 싶지 않아. 그런데도, 그는 상냥하게 말한다.
「여기까지 오면 가까우니까. 게다가 조금, 걷고 싶어」
나는 이유도 모르게 울고 싶은 느낌이 든다. 벤치에 늘어선 두 개의 델리 커피팩을 본다. 그의 거절이라고 느꼈던 건 내 착각이었던 게 아닐까 한순간 생각한다. 하지만.

착각일 리가 없다.
어째서 우리는 줄곧 입을 다물고 계속 걷고 있는 것일까. 함께 돌아가자고 말해 준 건 언제나 토오노군이었는데. 왜 당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건가요. 어째서 당신은 언제나 상냥한건가요. 어째서 당신이 내 앞에 나타난건가요. 왜 나는 이렇게나 당신을 좋아하는 걸까요. 왜. 어째서.
저녁 햇살에 반짝반짝하는 아스팔트, 그곳을 필사적으로 걷는 내 걸음걸이가 점점 부예져 온다. ―부탁이야. 토오노군, 부탁해. 이제 나는 참을 수 없어. 안돼. 눈물이 두 눈에서 넘쳐 흐른다. 두 손으로 훔쳐내도 훔쳐내도 눈물이 넘친다. 그가 알아차리기 전에 울음을 멈춰야 하는데. 나는 필사적으로 오열을 참는다. 하지만, 분명 그는 알아차린다. 그리고 상냥하게 말을 걸 것이다. 봐.
「......스미다! 어떻게 된 거야?」
미안. 분명히 너는 잘못한 게 없는데. 나는 어떻게든 말을 잇고자 한다.
「미안......아무것도 아니야. 미안해......」
멈춰서서, 고개를 숙이고, 나는 계속 울었다. 이제 멈출 수 없다. 스미다, 라는 토오노군의 슬픈 듯한 중얼거림이 들려온다. 여태까지 중 가장, 감정이 담긴 그의 말. 그것이 슬픈 울림이라는 것이, 내게는 무척이나 슬프다. 쓰르라미 소리는 아까보다 더욱 크게 대기를 채우고 있다. 내 마음이 외치고 있다. 토오노군. 토오노군. 부탁이니까, 부디. 더 이상.

―상냥하게 대하지 말아 줘.

그 순간, 쓰르라미 울음소리가 마치 썰물이 빠지듯이, 싹 멎었다. 섬 안이 정적에 감싸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굉음에 대기가 떨렸다. 놀라서 고개를 든 내 뿌예진 시야에, 먼 곳의 언덕에서 솟아오르는 불덩어리가 보였다.
그것은 쏘아 올려진 로켓이었다. 분사구에서 나오는 빛이 눈부시게 세계를 뒤덮고, 그것은 상승하기 시작했다. 섬 전체의 공기를 흔들면서, 로켓의 불꽃은 해질 녘의 구름을 태양보다도 밝게 빛내며, 똑바르게 올라간다. 그 빛에 이어서 하얀 연기탑이 끝없이 솟아올라간다. 거대한 연기의 탑에 저녁 해가 가려져서, 하늘이 빛과 그림자로 크게 나뉘어져 간다. 끝없이 어디까지나 빛과 탑은 뻗어간다. 그것은 아득한 상공까지 고르게 대기의 입자를 진동시켰고, 마치 갈라진 하늘의 비명과도 같은, 잔향(殘響)이 가늘고 길게 깔린다.

로켓이 구름 사이로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아마, 수십초 정도의 시간이었을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와 토오노군은 한마디도 내뱉지 않고, 높이 치솟은 거대한 연기탑이 완전히 바람에 녹아버릴 때까지, 언제까지나 그곳에 선 채로 줄곧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천천히 새와 벌레와 바람 소리가 돌아오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저녁해는 지평선 너머로 저물어 있었다. 하늘의 푸르름은 위쪽부터 점점 농도가 짙어져 갔고, 별이 조금씩 반짝이기 시작했다. 피부로 느껴지는 온도가 약간이지만 내려간다. 그리고 나는 갑작스레, 분명하게 깨닫는다.
우리는 같은 하늘을 보면서, 각기 다른 것을 보고 있었다는 것에. 토오노군은 나 같은 걸 보고 있지 않는다는 것에.
토오노군은 상냥하지만. 무척 상냥해서 언제나 옆에서 걸어주고 있지만, 토오노군은 언제나 나의 아득한 저편, 더욱 아득히 먼 곳의 무언가를 보고 있어. 내가 토오노군에게 바라는 것은 분명 이뤄지지 않아. 마치 초능력자처럼 지금은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우리는 이 앞으로도 줄곧 함께 있을 수는 없다고, 분명하게 알게 된다.

* * * * * * * * *

귀갓길의 밤하늘에는 쟁반같이 둥근 달이 떠 있었고, 바람에 흐르는 구름을 마치 한낮처럼 선명하게, 푸르스름하게 비춰내고 있었다. 아스팔트에는 나와 그의 두 사람 몫의 그림자가 새까맣게 비치고 있다. 올려다보니 전선이 보름달 한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어쩐지 마치 오늘이라는 날 같다고, 생각한다. 파도에 타게 되기 전의 나와, 타게 된 후의 나. 토오노군의 마음을 알기 전의 나와, 알고 난 후의 나. 어제와 오늘로, 내 세계는 이제 결코 같지 않다. 나는 내일부터,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계에서 살아간다. 그렇더라도.

그렇더라도. 불을 끈 방 안에서 이불을 푹 뒤집어 쓰면서 생각한다. 어둠 속에서, 방에 비쳐드는 물웅덩이같은 달빛을 바라보면서. 또다시 흘러넘치기 시작한 눈물에, 달빛이 서서히 뿌예지기 시작한다. 눈물은 계속해서 솟아나고, 나는 소리내서 울기 시작한다. 눈물도 콧물도 왕창 쏟아내며, 더 이상 참지 않고, 마음껏 큰 소리를 내서.
그렇더라도.
그래도, 내일도 모레도 그 후에도, 나는 토오노군을 좋아해. 역시 어찌할 도리 없이, 토오노군이 좋아. 토오노군, 토오노군. 나는 너를 좋아해.
토오노군만을 생각하면서, 울면서, 나는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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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지 해설할 부분은 없는 것 같고...

개인적으로 마지막의 로켓 발사 이후부터 흐르는 OST 트랙(번호로 아마 8번이었나)이

제가 가장 좋아하는 배경음 중 하나잉미.

나머지 하나는 엔딩곡(주제가 말고, 스탭롤 뜰 때의 그 엔딩곡) ㅇㅇ


그리고 여담인데, 카나에가 타카키 셔츠를 잡고

'상냥하게 대하지 말아 줘' 라고 속으로 말하는 부분은

영화에서는 '-하지 말아줘' 라고 나옵니다. 그래서 저는 처음에 영화 볼때는

'외롭게 하지 말아줘'라고 추측했었는데. 사실은 아니었음? 아오....=3=



아...뭐라고 더 쓰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응가가 마려워서 더 이상 못참게뜸. 화장실 가야지. 뿌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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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르 | 2008/05/15 21:25 | 소설 - 초속 5센티미터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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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九曜 at 2008/05/16 22:25
이제야 2화 읽겠네요ㅎ 잘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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